이제 벌써 50대 중반! 생각하면 살아온 세월이 까마득합니다. 하지만 칠성시장 굴다리 옆 을 지나며, 그 옛날 예닐곱 살 꼬마로 꼬물꼬물거리며 담장 사이로 기찻길에 올라가 기차 구경하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때로는 양자의 시간적 간격을 소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에 기가 막혀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친가, 외가로 해서 모두 대구가 수백 년 간의 고향이면서도, 고등학교를 졸업 후 서울로 유학가고, 그 길로 오랫동안 서울이나 경주 혹은 외국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다고 어찌 고향을 잊으리이까? 고향의 정경은 언제나 고스란히 머릿속에, 어쩌면 그보다는 더 깊은 곳에 깊숙이 저장되어 있었고 또 부단히 살아 움직였습니다. 다행히 몇 해 전 경북대학교로 발령받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판사로, 변호사로, 대학교수로 직업을 바꾸며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온 듯합니다. 법관으로 있을 때 가장 사건이 많이 몰려 있었던 곳에서 치열하게 근무했고, 변호사로 일하면서 새벽에 일어나 사건을 검토하며 소송서류를 작성했습니다. 대학교수로서는 한국헌법학회라는 전국학회의 회장직을 맡아 열심히 일하였고, 연구의 면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결과를 내었습니다. 지금까지 10권의 책과 많은 논문을 발표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치열한 업무처리와 그것이 가져다주는 약간의 보람에도 불구하고, 항상 제 몸 속 어딘가에서 퀭하니 빈 듯한 공간을 느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그것이 무엇에서 연유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청소년 시대 저의 큰 꿈이었던 ‘공공에 대한 봉사’(public service)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데서 생긴 것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고향 후배들을 단순한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라 ‘존중받아 마땅한 존귀한 인격체’로 키워나가기 위한 대장정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감수성을 갖도록 하고, 타인의 아픔을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따뜻한 인간적 기품을 갖도록 해나갔으면 합니다. 또 그들을 고향 대구와 이 나라를 빛낼 글로벌 인재들로 키워나가겠습니다.

많이 부족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다가가겠습니다. 제 손을 잡아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가진 큰 꿈을 이뤄나갈 수 있게 한 걸음, 한 걸음 이끌어 주십시오. 그 꿈은 우리 모두가 함께 가진 간절한 소망이라고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경북대학교 법학부 교수
신 평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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